[치매 | 싸울 땐 의연하고 현명하게]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면

눈높이 맞추고 그들 편에 서라
고운 말 기억하도록 자주 해줘라
전문병원·기관의 도움 받아라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는 더 이상 ‘강 건너 남의 집’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집 문제’가 돼 버렸다. 때문에 억지로 부인하고 비껴갈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할 때 오히려 치매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1 우선 치매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부모님은 괜찮겠지’ ‘나이 들면 다 그렇지, 뭐’ 하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대통령도 걸리는 치매를 어찌 “우리 부모는 많이 배우셨으니까, 아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피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혹시 연세가 드셨으니까 치매일지 몰라’라는 생각으로 조기에 검진을 받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치매는 조기 진단을 받을수록 치료 기회가 많아지고 경제적·사회적·가정적 문제에 여유롭게 대비할 수 있다.

2 만일 당신의 부모님이 병원에 가셔서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해도 우울해 하거나 절망하지 말라. ‘하필이면 우리 부모가 왜 치매인가’라는 식의 감정적 대응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받아들여라. 부모님께 적극적인 치료 기회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에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치매라는 병도 순간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치매의 원인을 교정하고 치료하는 데에 인색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라. 치매를 조기 진단해 치료할 때 전체 치매환자의 유병률을 50%로 감소시킬 수 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치매 치료는 비관적인 게 아니다. 치매에 걸리신 부모님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것, 전문의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 치매는 함께 나누어야 하는 ‘나눔의 병’이다. 부모가 치매로 진단 받으면 우선 가족이 모여서 대책을 함께 나눠야 한다. 장남, 장손, 며느리 등 누군가 한 사람에게만 감당하게 하는 순간 치매는 비극적인 재앙이 되어 버린다. 가족이 함께 나누고, 사회가 함께 나누고, 국가가 함께 그 부담을 나누어 질 때, 치매에 걸리신 부모님도 훨씬 행복하게 노년의 고비를 넘을 수 있다. 이 말은 뒤집어보면 치매임을 감추고 숨기지 말고 ‘함께 나눌 동역자(同役者)’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라는 것이다. 어린 손주와 할머니가 그림책이나 단어백과사전을 함께 볼 수 있게 배려하는 것부터 전문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 지역사회의 다양한 기관을 이용하는 것 등이 다 동역자를 찾는 일이다.

4 치매에 걸린 부모님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과거 부모님의 모습에 연연해서 ‘어쩌면 이럴 수가 있나’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뇌세포가 손상되고 위축되어 이제는 두 개의 눈이 아니라 한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기억하는 부모님께 눈높이를 맞춰 생각하고 대화해야 한다.

예를 들면 기억장애 때문에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하거나, 누가 가져갔다고 우기는 부모님께 “그게 아니잖아요. 어머니가 틀렸어요”라고 지적을 하고 교정을 해주기보다는 “아, 맞다. 그랬구나. 어머니가 맞네요, 잘 아시네요”하는 식으로 맞장구를 치며 부모님 편이 되어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쩌면 치매 부모와 생활하는 것은 하나의 눈을 가진 채 난쟁이가 되어버린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닐스’와 사는 세상일 수도 있다.

5 고운 치매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치매가 진행할수록 언어능력이 감소되어 제한된 표현이나 감정을 갖게 된다. 때문에 치매 초기부터 “고마워요, 감사해요, 예쁘시네요, 잘하셨어요”라는 말을 기억하고 자주 할 수 있도록 가족들이 도와줘야 한다. 그러면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한 후에도 곱고 예쁜 치매환자가 될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라. 화낼 일도 금방 잊어버리고 “이 사람은 참 예뻐, 착해, 고마워”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라면 치매에 걸렸어도 서로 행복하지 않겠는가.

치매 치료

알츠하이머 인지장애 2년까지 늦출 수 있어
혈관성 치매도 아스피린 등 약물로 진행 억제

치매 판정이 나면 전문기관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를 미루거나 방치할 경우 환자나 가족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이나 혈관성 치매가 아닌 기타 치매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완치되는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갑상선 기능 저하증에 의한 치매의 경우 갑상선 호르몬 투여 등의 적극적 치료가 필요하다.

알츠하이머병의 경우도 아직 치료방법은 개발돼 있지 않지만 증상을 완화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약물이 임상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를 투여하면 인지기능장애의 진행을 6개월에서 2년 정도 늦출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과 동반하는 수면장애, 망상, 각종 문제행동에 대해서도 비약물치료와 약물치료를 적절히 사용하면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는 아스피린 등 혈소판응집 억제제나 와파린 등의 항응고제, 혈류순환개선제 등을 투여하여 뇌혈관 질환의 재발이나 악화를 방지하는 게 중요하다. 혈관성 치매는 이러한 약물 치료와 위험요인 관리를 통해 더 이상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치매 환자와 즐겁게 사는 법

치매에 걸린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치매 환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남다른 이해심을 발휘해야 한다. 서울시광역치매센터에서 발간한 ‘치매환자와 즐겁게 사는 법’에서 치매환자를 대하는 상황별 요령을 발췌 소개한다.

상황 1 계속 반복하여 같은 질문을 할 때

→ 몇 번이라도 느긋하게 대답한다. 몇 번이라도 웃으면서 대답한다. (O)
→ “아까 알려줬는데 몇 번 얘기해야 하겠어요” “벌써 잊어버렸어요”라며 화를 낸다. (×)
치매 환자는 얘기해준 것을 금방 잊어버린다. 같은 것을 반복해서 물어보더라도 끈기있게 잘 대답해 줘야 한다. 화를 내게 되면 환자는 자신감을 잃게 되어 증상이 더욱 악화되는 수도 있다.

상황 2 불러도 대답하지 않을 때

→ 환자의 이름 또는 어린 시절의 애칭을 조용히 부른다.  (O)
→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예요”라며 화를 낸다.(×)
환자는 자신을 부르는 것을 모르거나 자신과는 관계 없는 소리라고 생각해 시끄럽다고 느낄 따름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등 자신에 대한 호칭을 인식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

상황 3 대변을 먹을 때

→ 조용히 대변을 치우고 “더 맛있는 것을 드릴게요”라고 과자 등 먹을 것을 드린다. (O)
→ “아이고 더러워라” “그건 똥이에요. 더러워 죽겠어.” (×)
치매가 진행되면 판단력이 저하돼 먹을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더럽다고 야단치면 환자의 혼란과 수치심만 가중시킨다.

상황 4 목욕을 시켜주는 도중에 폭력을 휘두를 때

→ “죄송해요, 아프셨어요” “어디 가려운 데는 없으세요”라고 말을 걸면서 씻어준다. (O)
→ “뭐하세요. 안돼요! 가만히 계세요!”라며 억누른다.  (×)
치매환자는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행동을 오해하여 충동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 환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것을 먼저 충분히 설명하여야 한다. 야단치거나 화를 내면서 강제로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상황 5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끄지 않을 때

→ 야단치지 말고 직접 가스를 잠근다. (O)
→ “불 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불은 사용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
치매환자는 기억력의 장애 등으로 여러 문제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 집안에 위험요소가 있는 것은 미리 파악해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 야단치거나 화를 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황 6 대소변을 지리거나 화장실이 아닌 곳에다 볼 때

→ “속옷이 젖어서 불편하시죠. 옷을 갈아입으시죠.” (O)
→ “요즘 자주 이러네.” “거기는 화장실이 아니잖아요.” (×)
치매환자는 지남력의 장애로 화장실을 찾기 힘들다. 또 대소변 나오는 것을 자각하지도 못하므로 야단을 쳐도 효과가 없다. 환자의 배설 패턴을 잘 파악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배설을 유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심해지면 기저귀를 채워야 한다.


/ 이은아 해븐리병원 원장

 

 

(위클리조선 weekly.chosun.com 발췌)